작성일 : 09-09-04 08:55
질투를 이기는 힘, 칭찬 - 질투심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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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들은 일반적으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성공을 추구하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비교와 대결을 조장하는 모든 것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의견이 점수를 대신한다.
그들은 성적표를 만들지 않고 상을 주지 않는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많은 이탈리아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은 능력주의,
곧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성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비난했다.
그 당시에는 모두 무슨 일을 하든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세했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경쟁은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더 많이 벌고 더 대접을 받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미국인들은 평등의 개념에 아주 민감하다.
모든 이들에게 경쟁의 가능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을 극복했던 사람들이 높게 평가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불이익을 안고 출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경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와 같은 선택에는 분명 이로운 점들이 있다.
우선 삶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확실한 장소를 찾을 수 있다.
개인 관계들은 대개 아주 투명하다.
하지만 경쟁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질투의 위협을 받는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다.
질투는 동일시 하는 데에서, 감탄에서 탄생한다.
우리는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너무 다른 사람,
전혀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질투할 수는 없다.
가장 잔인한 질투심은 동료들 사이에서, 한 사람은 성공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했을 때 생긴다.
배우는 다른 배우를, 신문 기자는 다른 신문 기자를, 조각가는 다른 조각가를,
그리고 사냥꾼은 다른 사냥꾼을 질투한다.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질투를 느끼고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질투는 같은 수준에 있던 사람에게 추월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타난다.
질투는 우리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때, 그와 경쟁할 수 없을 때 나타난다.
그 순간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놓여있다.
그의 성공을 인정하고 박수갈채를 보내느냐, 아니면 그의 실패와 파멸을 원하기 시작하느냐이다.
이제 우리는 성공을 칭찬해주는 사회가 질투하는 경향이 적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경쟁을 자극하듯이 그 성공을 인정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투 때문에 행동하기를 포기하고 곧바로 목표를 포기한다.
우리는 그저 그가 실패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질투는 우리 스스로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이런 태도는 마음속으로 더 나은 사람인 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무너뜨리고 싶은 욕망과 결부된다.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위험스러운 경쟁에 직면하면 자신의 이상을 파괴해버리려고 애쓴다.

아름다운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살리에르는 모차르트가 천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차르트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와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 질투심 많은 사람은 정의의 가면으로 자신의 질투를 가린다.
니체와 막스 셸러는 그런 사실을 아주 훌륭하게 묘사했다.
원한을 품은 인간은 아름다운 사람들, 강한 사람들, 승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덕이 있는 게 아니라 결점만이 있다고 믿는다.
진정으로 덕망 있는 사람은 가난하고 고통 받고 뒤로 물러서 있는 사람, 패자, 즉 자신이라고 믿는다.
이른바 원한의 윤리 속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항상 처벌을 받아야 한다.
불행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만이 순수한 마음을 가졌고 그들이 바로 구원을  운반하는 사람들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이든 마르크스주의이든 분명하게 이런 형태의 확신을 강화시켰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 질투가 정말 사회적인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외국으로 팔려나가지도 않을 것이 분명한 작가를 골라 자기들 뜻대로 상을 준다.
그리고 그들은 질투심이 작용해서 이런 결정을 한 게 아니라 예술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변명을 한다.
비슷한 일들은 많은 범속한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을 심사해야 하는 대학 시험에서도 벌어진다.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무능한 관리인들은 사업적 능력과 혁신적 능력을 지닌 사람을 고립시켜버린다.
심지어 객관적인 기사를 쓰는 신문사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국장은 자기보다 훨씬 유명해질 수 있는 기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질투심은 보편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전통이 길게 이어져온 나라에서는 경쟁과 시합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또한 공적을 인정하고 성공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질투심을 중화시키려 애쓴다.
이런 나라의 문화는 자신 속에 틀어박히려는 개인을 가로막고 그를 떠밀어 활동하게 하고,
최선을 다하고, 다른 길을 찾고, 훌륭한 사람을 칭찬하게 만든다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음 <성공한 사람들은 말의 절반이 칭찬이다> 중에서